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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발한 커피 광고, 이후 세상이 바뀌었다 1
내용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금주법이 탄생시킨 마피아와 커피브레이크

18세기 프로이센에서 커피 로스팅은 국가만이 할 수 있었다. 세금을 걷기 위해서였다. 불법 로스팅을 단속하기 위해 냄새를 맡고 다니는 '스니퍼'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였다(관련기사: 정확히 60개 커피콩 갈아 커피 한 잔 마신 베토벤 http://omn.kr/1v8lu).

비슷하게 우리나라에는 '술조사'라는 것이 있었다. 사전에도 나오는 이 말은 "몰래 담근 술과 관련된 행위에 대해 조사하는 일"을 일컫는다. 1966년부터 1977년까지 술을 가정에서 담그는 것이 불법이었다. 세무서에서 나오는 술조사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마을에 들이닥치기 일쑤였고, 술조사가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 사람들은 술항아리를 여기저기 숨기고, 땅에 묻기에 분주하였다. 아예 집을 걸어 잠그고 피신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걸리면 술도 빼앗기지만 벌금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양곡관리법'이 단속의 근거였다. 그러나 아무리 법으로 금지를 해도 제사나 차례 때 사용해야 할 술이었고, 농사로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술이었다. 관습과 의례를 하루아침에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것이 무모한 짓이었다. 식량부족을 핑계로 무식한 정치인들이 벌였던 역사 속 촌극이었다.

불가사의한 시대

역사적으로 금주 운동이나 금주법 제정이 추진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전쟁이나 곡물 부족이 공통된 원인이었다.

미국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금주법(National Prohibition Act) 제정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다. 다수당이던 공화당 소속 앤드류 볼스테드(Andrew Volstead) 의원이 주도하여 통과시킨 법에 대해 민주당 출신 윌슨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이를 의회가 1919년 10월 28일에 재의결함으로써 1920년 1월에 법이 시행되었다.

와인과 맥주를 포함해서 0.5% 이상의 알코올이 함유된 모든 주류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곡물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선의로 출발한 금주 운동은 적대국인 독일의 음료 맥주에 대한 반감, 경건한 삶을 강조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주장, 심지어는 과음으로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들에 대한 주부들의 불만 등이 결합하여 금주법을 탄생시켰다. 노동자들의 과음으로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산업자본가들도 지지하였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Marie Nadine Antol(2002). Confessions of a Coffee Bean: the Complete Guide to Coffee Cuisine. N. Y. :Square One Publisher.
Mark Pendergrast(2010). Uncommon Grounds: The History of Coffee and How it Transformed our World. N. Y.: Basic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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